프롤로그
이 글은 영월의 변두리 시골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쉬고 싶을 때 온종일 뒹굴며 겪었던 소소한 일상을 기록한 일기다. 아무렴, 영월의 멋진 풍경이나 유행하는 카페, 식당 등을 소개하는 글이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들은 오롯이 진정한 쉼을 찾아 떠났던 나의 봄, 영월에서의 소소하고도 귀중한 이야기다.
유리와 이룬의 시골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영월에 온 이유
일이 모두 취소된 후 내 일상은 많이 바뀌었다. 게으르게 살아본 적이 한 번도 없고, 일하는 걸 병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생산적일 수 없는 현실에 적응해가며 소파 아니면 침대에서만 두 달을 보냈다. 밤낮은 바뀌어서 해가 지면 일어나서 해가 뜨면 잠을 자는 생활을 반복했다. 어쩌면 아침이 돌아오는 게 두려웠던 것 같다. 내가 또 무얼 잃게 되는 날이 될까 봐, 또 한 번의 좌절을 해야 하는 날이 될까 봐. 아마도 이때가 인생을 살면서 처음으로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마주한 시기였다. 발버둥 치고 헤엄을 쳐도 자꾸만 가라앉는 첫 바다 수영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깊은 심연 속에 나는 잠겨버렸다. 자다가 숨이 턱 막혀 깨는 순간이 계속되어 병원에 가고,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지냈다. 버티고 견뎌내며 살아갔다.
그런 일상 속에서 반가운 소식이 왔다. 광고 메일만 쌓여가던 중에 빛나는 메일 한 통이 보였다. 영월에 와서 한 달을 지내며 그 순간들을 기록한 책자를 펴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마치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던 순간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메일에 오케이 사인을 보내기도 전에 내 마음은 이미 영월에 가 있었다. 그 정도로 좋은 기회였고, 한없이 바스라져 있던 내게 간절히 도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5월 중순, 30kg이 넘는 짐을 10년 된 작은 차에 싣고서 영월로 이사 오게 되었다.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러다 엊그제 비가 내린 그날, 내게 행복의 감정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려줬던 그날의 감정이 오고 간 뒤 드디어 나는 질문을 던진 독자님께 회신을 할 수 있었다.
"행복이라는 게 잠시 우리에게 머물다 가는 존재라 무어라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다만 며칠 전 비 오는 날 오빠와 노래 들으며 대청마루에 앉아 있을 땐 정말 행복하다는 말 말고는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어요. 내리는 비의 냄새도, 천둥 번개의 소란마저도 조금 더 머물다 가기를 바랐어요. 이 순간을 놓치고 싶디 않은 감정이 들면, 그게 바로 행복이 아닐까 싶어요."
시골 생활 계획표
사실 이런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언제 한번 이렇게 쉬어보겠나 싶어 게으름을 마음껏 즐기는 중이다. 다만 성격상 태어나 한 번도 스스로에게 게으름을 허락한 적이 없던 나로서 이런 날들이 지속되면서 죄책감이 드는 순간들도 종종 있었다. 너무 생산적이지 못하게 소중한 시간을 흘려버리는 건 아닐까 하면서 말이다.
이런 고민 때문에 시골 생활을 오래 했던 A에게 물었더니, 그래서 시골 사람들은 더 계획적이고 부지런하게 산다고 했다. A도 너무나 늘어져 있는 게 싫어 계획표를 짜서 꼭 하루에 몇 개, 그것만은 지키자고 약속했다고. 그래서 나도 계획을 짰다. 지켜질지 아닐지 몰라도 계획을 짜는 동안만은 벌써부터 성실해진 것만 같다.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시골 생활은 정말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었다. 나야 그저 머물다 가는 이방인이었지만, 이 땅에 자리 잡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 만큼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에 책임을 지고 손을 보며 지켜나가는일. 시골에서 일상을 보내는 모든 분들에게 그저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냄새
우리는 오감 중에 꼭 하나씩 특화된 감각을 지니고 산다. 나는 후각에 굉장히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어릴 적부터 냄새에 예민해서 가끔 코를 막어버리고 싶은 순간들이 꽤 있엏다. 이것을 재능이라고 부르기에는 어쭙잖지만, 그래도 맡는 것 하나는 참 잘한다.
이렇게 냄새를 몇 가지로 나눠놓았으니 언젠가 다시 그 비슷한 향이 날 때 떠올리기 쉬워질 것이다. 냄새를 잘 맡아서였다고 하지만, 결국 옅어어지는 기억을 종종 진한 감각으로 회상하기 위한 나만의 방식이었다.
에필로그
늘 같은 곳에 있었지만 공간이 주는 이질감 덕분에 우리는 살면서도 매일을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그토록 내가 찾아 헤매었던 진정한 휴식. 쉬면서도 불안해하지 않는, 필요 없는 것들을 자연에 내버려두고 지내는 삶.
어떤 부분이 나를 그렇게 편안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는 피고 지는 꽃만 봐도 하루를 살아내기에 충분했으니, 분명 많은 곳을 떠돌며 여행하던 시절과 다른 평온한 감정임은 분명했다.
영월에 살았지만, 잠시 어느 계절이 머물다 간 공간에 오롯이 남겨졌었다. 어느 하나를 더 바라지도 않으며, 잃는다고 불안해하지도 않으면서 고요하고 잔잔하게.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속도에 맞춰 내 정신과 마음도 유연하게 흘렀다.
참 고마운 시간, 그리운 영월. 돌이켜보니 내 잃어버린 봄이, 그곳 영월에 있었다. 푸른빛 벚나무가 붉어지는 계절이 돌아오면 다시 찾아갈게. 곧 다시 만나자, 고마웠어!
글/사진 : 청춘유리
기획/제작 : 인디문학1호점
주관 : 영월군
*이 책에 사용된 모든 사진과 글의 저작권은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이 책은 영월군의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됐다. 읽는 내내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글이 정겹게 느껴졌다.
마루에 앉아 빗소리를 듣는 것, 바람이 불면 산에서 들려오는 나무의 흔들리는 소리, 아궁이와 까맣게 타버린 아랫목, 방바닥의 노란 장판, 시골집에서만 맡을 수 있는 특유의 냄새 등 경험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것들을 이 책을 통해 다시 읽게 되니 마치 어렸을 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골에서 산다는 것이 어렸을 때는 몰랐지만 지금 와서 보니 큰 경험과 자산이 되었다. 내 자식들 만큼은 잠깐이라도 시골에서 키워보고 싶다. 그곳에서만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변하는 것과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것을 소리와 냄새만으로도 알 수 있게 된다. 도시에서는 맡을 수 없는 어느 비싼 향수보다도 좋은 냄새와 그 무엇으로도 따라갈 수 없는 소리다. 한 번은 친구들에게 눈이 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눈은 소리 없이 내리지 않냐고 되물었다. 눈이 오는 날, 모두가 잠든 새벽에 마당에 나가 가만히 서 있으면 눈이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함박눈, 싸라기눈. 소리도 눈의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그 소리가 좋아 눈이 오는 날에는 새벽에 혼자서 눈이 오는 소리를 듣곤 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어렸을 때 시골에 살아서 참 좋았다 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사진과 글이 참 예쁜 책이다. 그중 일부를 이곳에 옮겨 소개해 보았다.
이런 책을 만들어 준 영월군과 청춘유리님께 감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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