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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과 나 사이, 그 정직한 거리
    일상/글 2025. 6. 29. 11:46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


    기대는 참으로 묘한 감정이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내가 바라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상상을 품는 일. 그 상상이 희망이 될 수도 있고, 착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우리는 그 가능성에 마음을 건다. 기대는 보통 따뜻한 감정처럼 느껴진다. '아직 나는 세상에 바라는 것이 있고, 세상도 나에게 무언가 줄 수 있을 거라 믿고 있다'는 신호 같기도 하다. 그래서 기대는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삶이 아직 나를 버리지 않았다는 마지막 끈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기대는 도이에 그 고통의 시작이기도 하다. 우리가 실망한다는 건, 그 실망이 있기 전 어떤 기대가 있었다는 뜻이다. 바라던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 느끼는 좌절, 믿었던 사람이 다르게 행동했을 때의 허무함, 그 모든 것은 기대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누군가는 말한다. 기대하지 말자고.

    세상에, 사람에게,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조차.

     

    그 말은 단호하고, 어쩌면 단순해 보이지만, 그 단순함은 고요한 슬픔을 동반한다. 기대하지 않는다는 건 어쩌면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절박한 마음의 반영일 수도 있고, 혹은 모든 기대가 무너진 뒤의 깊은 허무에서 나온 결심일 수도 있다.

     

    그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는 이것이다.

    기대하지 않는 삶은 과연 가능한가?

     

    우리는 모든 것을 바라볼 때 내 안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계산하고, 결론을 내린다. 사람을 만나도, 책을 읽어도, 길을 걸어도 그 모든 것은 나라는 렌즈를 통해 해석된다. 기대를 품는 것 자체는 인간이 '시간 속을 산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인식하며, 미래를 상상하는 존재다. 기대는 그 상상 위에 세운 정서적 구조물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안심하고, 방향을 잡고, 때로는 버틴다.

     

    기대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무너짐의 반복 속에서 등장한다. 혹은, 세상을 더 정직하게 바라보고자 하는 간절함에서 비롯된다.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건 그것을 내 욕망이나 두려움 없이 바라보겠다는 다짐이자 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나라는 존재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기대하지 않으려는 그 순간에도 '기대하지 않는 나'라는 이상을 향해 또 다른 기대를 품고 있다. 이건 어쩌면 존재의 역설이다. 욕망을 비우려는 노력조차 욕망이라는 것. 무심해지려는 시도조차 마음이 움직인다는 증거라는 것.

     

    그래서 '있는 그대로 본다'는 건 완성된 능력이 아니라, 끝없는 성찰과 훈련이다. 세상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그 안에서 내가 덧붙이려는 의미들을 인식하고, 그 의미들이 나의 과거, 욕망, 상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아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견디는 것.

    이런 의미에서 기대하지 않는다는 건 세상으로부터 나를 완전히 격리시키는 일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세상과 더 정직하게 관계 맺기 위한 거리 조정일 수도 있다.

    너무 가까워지면 모든 것이 흐려진다. 가까움은 애정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왜곡과 집착, 투영도 함께 만들어낸다.

    기대를 내려놓는다는 건, 그건 체념하건, 외면하거나, 초연해지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진실하게 보고 싶다는 깊은 의지일 수 있다. 기대 없이 바라보는 것, 그건 애정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애정을 더 투명하게 만드는 일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어떤 기대도 덧붙이지 않고 누군가를 바라볼 수 있다면 그건 사랑에 가까운 시선일 것이다. 그 사람을 바꾸려 하지 않고, 그 사람이 나에게 무엇이 되어주길 바라지 않으면서 그저 그 사람이 거기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연결일지 모른다.

     

     

    기대를 놓는다는 것은,

    세상과의 연결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더 정직하게, 더 담담하게,

    세상과 마주하려는 다짐일 수 있다.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분명히, 인간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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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ngDu의 브런치스토리

    엔지니어 | 하루의 틈 사이에 마음을 눕히는 사람. 조용한 문장 하나, 따뜻한 빛 한 줄기에도 오래 머물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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